
손빈의 계릉전투와 마릉전투
손빈
손빈은 생졸년대가 분명치 않고 그의 본명도 전해지지 않고 단지 그가 빈형(무릅뼈가 제거되는 형벌)을 받은 적이 있기 때문에 손빈이라고 불려졌다.
어느날 경마대회에서 손빈은 전기에게 “당신께서 이번에 큰 돈을 걸어보시면 내가 이길 수 있는 방법을 가르쳐 드리리다”라고 아뢰였다. 전기는 손빈의 뛰어난 재지를 알기 때문에 손빈의 의견에 따라 제 위왕,귀족들과 천금의 도박을 걸고 경마대회를 하였다. 경마대회가 시작되기 전에 손빈은 전기에게 “장군께선 먼저 당신의 하등 말을 가지고 상대의 상등 말과, 둘째 당신의 상등 말을 가지고 상대의 중등 말과, 마지막 당신의 중등 말을 가지고 상대의 하등 말과 경주케 하십시요”라고 아뢰였다.
결국 세번의 경주를 끝마치고 전기는 2승1패로 일천황금을 획득하였다. 전기는 이 때문에 손빈을 제나라 위왕에게 천거하였고, 제나라 위왕은 손빈에게 군사방면에서 뛰어난 병법이론을 듣고 그를 장군으로 임명하였다. 손빈의 경마대회 이야기는 병법전략의 가장 원시적인 생동감있는 사례로 볼 수 있다.
주 현왕56년(기원전354년), 위나라는 방연이 거느리는8만병사를 파병해서 수도 대량에서 출발하여 조나라 수도 한단을 공격하였다. 조나라는 위나라의 공격을 막아낼 수 없어 제나라에게 구원을 요청하였다. 제나라 왕은 손빈을 장군으로 삼아 파병하려 하자, 손빈이 사양하면서 “형벌흔적인 남아 있는 사람은 안됩니다”고 사양하였다. 이에 제나라 왕이 기원전353년에 전기를 주장을 삼고 손빈을 군사(책사)로 삼아 차안에 앉아 전략을 짜도록 하고 8만 병사로 조나라를 구원하게 하였다.
전기가 병사를 거느리고 곧장 조나라로 들어가 위나라와 결전을 치루려 하자, 손빈이 이를 말리면서 “무릇 엉켜있는 실타래를 풀려면 반드시 그 실마리를 찾아야 합니다. 실(강한곳)을 피하고 허(약한곳)를 공략한다면 자연히 상대방의 포위망을 풀 수 있습니다. 현재 위나라가 조나라를 공격하고 있는데, 그들의 젊은 병사와 예리한 군졸은 모두 싸움 전방에 배치하고 있고, 국내에는 노약잔병만 머물러 있으므로 장군께선 군대를 이끌고 위나라 수도 대량을 공격하는 것이 낫을 것 같습니다. 교통보급로를 점거하고 그들의 방위가 허술한 곳을 공격하면 방연은 반드시 조나라 치는 것을 포기하고 자기 나라 위나라를 구하기 위해 회군할 것입니다. 이렇게 하면 우리가 조나라의 포위망을 풀어버릴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또한 위나라의 허약한 곳을 공략하는 효과를 얻을 수 있습니다” 전기가 손빈의 건의을 받아들여 계릉에 주력부대 진지를 치고 전투준비를 하였다. 대략 11월에 방연이 군대를 계릉으로 회군하다 제나라 군대의 공격을 받아 대량으로 패퇴하였다. 위나라에 포위되었던 조나라를 구한 이런 성공교훈은 중국역대에 병가가 거울삼는 방법 중 하나이며 중국전쟁사에서 중요한 위치를 점하고 있다.
계릉전투는 위나라 군대가 비록 패전하였지만 아직 큰 병력손실을 보지는 않았다. 계릉전투 13년후에(기원전341,제나라 위왕56년), 위나라는 조나라와 연합해서 한나라를 공격하였는데, 한나라는 제나라에게 구원을 요청하였다. 제나라가 이에 한나라와 위나라간의 지구전으로 인한 양자 모두 피로로 지쳐있을 때 전기를 대장으로 임명하고 손빈을 군사로 삼아서 출병하여 한나라를 구하고 곧바로 위나라 수도 대량을 취하였다. 위나라가 제나라 군대가 위나라를 쳐서 한나라를 구하려고 한다는 소식을 얻어듣고 바로 한나라를 포위한 군대를 돌려 대량에 되돌아왔는데, 위나라 혜왕은 주력부대를 가지고 제나라 군대에 맞서 싸워 계릉전투의 패배를 갚아주려 결심하였다. 이에 위나라 혜왕은 태자 신을 상장군으로 임명하고 방연을 장군으로 하여 10만주력군대를 이끌고 제나라와 결전를 펴려 하였다. 손빈은 전기에 다음과 같이 건의 하였다. “삼진(한,위,조)병사가 종래 용감무쌍하여 제나라를 경시하는 것을 이용합니다. 그들이 제나라 군대를 담이 작은 겁쟁이로 여기니 그들에게 더 약한 모습을 보여줘 적을 추격하도록 유도한 연후 틈이 났을 때 치명적 공격을 퍼붓을 수 있습니다.” 손빈은 또한 적을 유인하는 방법을 구체적으로 제시하고 있다. “위나라 군대와 접촉하였을 때 패퇴하는 것으로 가장하고, 퇴각하는 첫 날은 10만개 솥을 올려놓는 가마를 파고, 둘째날은 5만개로 줄이고, 셋째날은 3만개로 줄여서 위나라 군대로 하여금 제나라 군대가 매일 다량의 사병이 탈영하여 도망쳐 전투력이 크게 약해진 것처럼 오인케 한다면 위나라 군대는 아무것도 되돌아보지 않고 추격해올 것입니다.” 과연 방연은 제나라 군대의 불 때는 시설이 날마다 줄어드는 것을 보고 아무 생각없이 “나는 원래 제나라 군대가 담이 작은 겁쟁이라는 것을 알았다. 우리 국경에 들어온지 채 3일이 안되어 사병이 반이상 도망쳤구나!”라고 말하였다. 이에 보병을 제외하고 단지 정예부대만 이끌고 추격하였다. 손빈은 방연의 행군속도를 계산해서 날이 저무렀을 때 마릉에 도착하게 하였다. 마릉은 길이 좁고 주변이 산악구릉으로 이루어져 병사를 매복시키기 좋은 지역이다. 커다란 나무의 겉표면을 벗기게 하고 흰 바탕의 표면 위에 “방연은 이 나무 밑에서 죽다”고 쓰도록 시켰다. 그런 연후에 제나라 병사중 활을 잘 쏘는 사병 1만명을 도로 옆 구릉 양변에 매복시켰다. “밤에 불빛이 비치면 모든 화살을 발사하라”고 명하였다. 방연은 과연 늦은저녘 이 큰 나무 아래에 도착하여 흰색 바탕에 쓰여있는 글자를 보려고 불을 붙이고 글 내용을 보았는데, 채 나무에 쓰인 글자를 다 읽기 전에 제나라 매목사병이 모든 화살을 이를 향해 발사하니, 위나라 군대는 크게 혼비백산하여 자신을 돌볼 조차 없게 되었다, 방연은 비로소 이것이 손빈의 계책을 알게 되었지만, 이미 군대가 대패하여 만신창이가 된 상태였다. 그러나 방연은 끝까지 패배를 인정치 않고 “마침내 천한 자(손빈을 낮게 말함)의 명성을 이루게 하였구나!”고 분개탄식하면서 자결하였다. 제나라 군대는 승기를 타고 공격하여 10만 위나라 군대를 격파하고 위나라 태자 신을 포로로 잡아 개선하여 돌아왔다. 손빈도 탁월한 군사재능(병법이론)으로 세상에 이름을 날리게 되었다.
1972년 산동 임기 은작산 한묘에서 출토된 죽간 <손빈병법>은 손빈의 군사사상을 반영하고 있다. <손빈병법>은 대략 손무의 군사사상을 계승하고 전국중기 이전의 전쟁교훈을 총결하였다. 손빈은 전쟁에는 일정한 규율이 있다고 여기고 있는데, 전략전술상 ‘세’를 귀하게 본다. 즉 일정한 조건에 의거해서 주동권과 우세를 점하고 기존의 속전속결의 이론을 뛰어넘어 지구전(장기전)의 사상을 제시하고 있으며, 전국시기 경제의 발전에 상응해서 성을 공격할 것을 강조하고, 상대군대을 완전히 무너뜨리고 적장을 죽여야만 온전한 승리라는 섬멸전 이론을 개창하였으며, 야전에서 전차의 운용이나 진법에 대한 연구와 장수통솔력의 필수조건 등에 대해 천술하고 있다.
요즘 연구에 의하면 <손무병법>과 <손빈병법>은 다른 저작으로 보고 있다. 이 두 저작은 이전에 구별없이 <손자병법>으로 불려웠지만, 최근 연구에 근거해서 보면 구별해서 다른 두 저작으로 보는 것이 합당하다.
손빈은 두번 부활했다.
사마천의 열전에 따르면 손빈은 젊어서 방연(龐涓)이란 인물과 함께 병법을 공부했다.
뒤에 방연은 위나라 혜왕의 장수가 되었다.
그는 손빈의 재능이 자신보다 뛰어남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그를 위나라로 초빙한 뒤 혜왕에게 모함하여 두 다리를 자르는 ‘빈형’(빈刑)을 당하도록 했다.
또한 그의 이마에는 먹으로 죄명을 새겨넣었다.
손빈의 이름 ‘빈’(빈)은 빈형을 당한 데서 유래했다. 감금당해 있던 손빈은 제나라 사신의 도움으로 제나라로 탈출한 뒤 제나라 장군 전기(田忌)의 문객이 된다.
그가 지략을 짜내어 전기로 하여금 귀족들의 말달리기 경주에서 우승하도록 도운 일은 유명한 고사다.
전기의 천거로 제위왕의 군사(軍師)가 된 손빈은 방연이 참모로 있는 위나라와 두 차례 전투를 벌인다.
방연은 두 번째 전투인 마릉싸움에서 손빈의 위장도주 전술에 말려들어 크게 패한 뒤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이것이 손빈의 첫 번째 부활이었다면,
2천년 만에 그의 저작이 햇빛을 본 일은 그의 두 번째 부활이라 해야 할 것이다.
손빈은 “불우한 처지가 사람을 분발하게 만든다”는 사마천의 인생철학을 입증하는 대표적인 사례였다.
既馳三輩畢,而田忌一不勝而再勝,卒得王千金。
달리기 경기가 3차례 끝나자 전기는 2승 1패의 결과로 결국 내기에 이겨 왕은 천금을 얻었다.
출처: https://kydong77.tistory.com/21110 [김영동교수의 고전 & Life:티스토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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